어제 저녁에 있었던 일이다. 개포동(서울시 강남구)에 있는 한 치킨집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양념 통닭을 거하게 먹고 계산을 할 때였다.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이 있지요? 어제도 스무 마리나 팔았어요."
주인집 아주머니의 말씀이었다. 최근 광우병과 함께 화두에 올라 있는 조류 독감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일 터. 원래 나는 전부터 조류 독감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높은 온도에서 조리한 닭은 설사 조류 독감에 걸려 있었다고 해도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주머니의 이어지는 말씀이 매우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어디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고 싶다고 해서 먹지 않을 수 있을까. 직접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먹는 다른 음식에 조미료로, 또는 기타 다른 형태로 얼마든지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가 재료로 쓰일 수 있음을, 아주머니께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셨던 것일까. 미국산 쇠고기가 값이 싼 만큼 회사에 이윤을 조금이라도 더 남기고 싶어하는 자본가들이 그것을 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음은 경제적인 기초가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나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던가.
이런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아주머니의 화법에는 큰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게 될 경우, 어쨌거나 미국산 쇠고기 소비의 중심에는 부유층이 아닌 돈 없는 서민들이 서게 될 것이다. 그만큼 부유층보다는 나와 같은 서민층이 광우병의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아주머니의 말씀은 곧 "돈 없으면 죽어라!"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이명박 대통령이 먹을 것이 없어 폭동을 일으킨 프랑스 시민들에게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라고 말했던 마리 앙뜨와네뜨와 같은 인물로 비춰지는 것은 나만의 발상일까.─마리 앙뜨와네뜨는 시민들에게 처단당할 운명이었으니…….
"광우병도 똑같아요. 미국산 먹을 사람만 먹고, 안 먹으면 되는 거죠."
어디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고 싶다고 해서 먹지 않을 수 있을까. 직접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먹는 다른 음식에 조미료로, 또는 기타 다른 형태로 얼마든지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가 재료로 쓰일 수 있음을, 아주머니께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셨던 것일까. 미국산 쇠고기가 값이 싼 만큼 회사에 이윤을 조금이라도 더 남기고 싶어하는 자본가들이 그것을 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음은 경제적인 기초가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나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던가.
이런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아주머니의 화법에는 큰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게 될 경우, 어쨌거나 미국산 쇠고기 소비의 중심에는 부유층이 아닌 돈 없는 서민들이 서게 될 것이다. 그만큼 부유층보다는 나와 같은 서민층이 광우병의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아주머니의 말씀은 곧 "돈 없으면 죽어라!"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이명박 대통령이 먹을 것이 없어 폭동을 일으킨 프랑스 시민들에게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라고 말했던 마리 앙뜨와네뜨와 같은 인물로 비춰지는 것은 나만의 발상일까.─마리 앙뜨와네뜨는 시민들에게 처단당할 운명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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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대학을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에서는 무엇을 공부하는 것일까?
대학이 단순히 취업을 위한 간판이나 인맥을 맺기 위한 '도구'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면, 대학 교육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인가?
기대에 부풀어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된 나로서는, "진정한 학문 탐구의 장"으로서의 대학이 아닌, (실질적으로) 단순히 취업과 자신만의 미래를 위한 "인맥 만들기의 장소", "학점과 간판을 따기 위한 장소"로 전락해버린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내가 얻어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내기 새로 배움터', 줄여서 '새터'라고 하는 곳에서, 다른 동기들과 선배들을 만나 처음으로 내가 던진 질문은 "어째서 일본어과에 지원했는가?"였다. 나의 경우에는 일본어에 대한 소신을 갖고 있었고 일본어라는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열정이 있었기에 다른 쟁쟁한 학교들을 물리치고 일본어과에 지원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렇기에 다른 친구들의 지원 동기에 대해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내게 돌아온 것은 약간의 실망이었다. 그나마 내 마음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서."라는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에 있어서 '수학능력시험'에서 자신이 받은 '점수'가 갖는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입시를 치뤄본 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해온 '내신 강화 정책'도 정부가 강력히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주체인 대학측에서 거부함으로 흐지부지되어, 08년도 입시에서도 내신 점수는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니지 않았을 정도이니, 그 영향력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경쟁률이 높은 대학에 안전하게 합격하기 위해서는 높은 점수가 필요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점수'라는 것이, 자신의 꿈이나 적성과는 전연 관계가 없이 단순히 좋은 학벌을 갖고, 이른바 '잘 나가는' 선배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의 충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전반적인 사고 방식이 최근 학생들 사이에는 보편적인 것 같다.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에는 소위 취업하기 좋고 잘 나가는 경영, 경제 분야 학과들이 뜨고, 전통적인 인문 계열의 과들은 하락세인 경향이라든지, 공공연히 조장되고 있는 대학의 서열화 현상 등이 이러한 사고방식과 전반적 문화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대학 교육이 갖는 문제점의 근원이 바로 이 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점수에 맞춰서 원서를 내고, 적성에 맞지 않아도 점수에 맞추어 학교에 다니는 현상이 계속되는 이상, 한국 대학들이 진리를 탐구하는 곳으로서의 기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로, 언제부터 '학문 연마의 장'이 자신의 백그라운드를 위한 존재로 변질되었는지 알 수도 없고, 그런 문화를 이해하기 힘들다. 물론 자신이 노력한 데 대한 보답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것에는 찬성하고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주객전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만은 자명할 것이다.
대학은 학문 연구의 장이다.
이제는 진정한 아카데미즘을 논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티스토리에 처음 입성했던 때는 아마 2006년 겨울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한다.
그리고 그 2년이 지나는 동안에 내 사고 방식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점점 더 나아가는 과정의 가운데에 지금 내가 여기 서있다고 생각한다.
초기의 나의 티스토리 블로그에는 어린 마음에, 지금 보기에는 부끄럽기까지 한 글들을 쏟아냈었다. 그리고 지금, 대학이라는 문턱을 넘어와서 다양한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가운데에서 또 다른 사고, 전보다 조금 더 나은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나는 더 진보해 나아갈 것이라는 점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에 나는 반성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블로거로서의 나를 시작하기 위해, 이전의 부끄러운 허물들을 치워버리고 여기 새로운 글을 한 글자씩 적어나가고 있다.
나는 입대를 얼마 남겨두고 있지 않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약간의 여유를 갖고, 군에 들어가 또 다른 생활을 하며 또 다른 사고방식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통과의례를 거치면 또 다른 진보가 내게 기다리고 있을 것임도 믿는다.
군 생활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블로깅을 할 수 있을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이 순간에 열중하여, 내가 무슨 생각을 갖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티스토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싶다.
철없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여기 새로운 티스토리 입성 소감을 적는다.
